오승현의 환경이야기 2.

ESG의 시대, 에코피아의 상상력을 꿈꾸며 2: 쓰레기와 문명의 위기

인간의 문명 사회는 자연을 변형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조직적으로 구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규약, 국가 통치의 형태를 구축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문명 사회가 도래하기 전 인간이 자연물을 변형하는 방법은 주로 간단한 석기를 도구로 삼아 사냥한 짐승을 먹기 좋은 형태로 만들거나 나무에 불을 피워 그 열과 빛으로 생존에 유리한 자원과 환경을 얻는 과정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 여기서 생겨나는 부산물은 때로 자연에 반영구적인 흔적을 남기곤 했는데,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들, 불에 의해 탄화된 목재, 곡물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조직적인 문명 사회가 등장하면서 인간 기술 활동의 흔적은 그 자국을 더 오래 남기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중국의 만리장성 같은 거대한 석조 구조물은 말할 것도 없고, 금과 은 그리고 청동과 같이 산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물건들은 고등 문명을 대변하는 위대한 성취로 여겨졌다. 여기에 문자는 덤이었다. 그런데 인류의 이 위대한 기술적 성취는 어떤 의미에서 시간의 정화 작용에 의해 “처리되지 않아” 그 흔적이 자연의 역사에 깊이 남은 결과에 불과하다.


우리는 한때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자연물을 변형하고 조작하여 만들어진 인공물이 그 쓰임[用, use]을 다하고 방치되거나 버려져 처리되어야 할 대상이 된 것을 ‘쓰레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더 이상 파라오의 무덤 혹은 그의 사후 영원한 삶을 기원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고, 만리장성이 유목민의 침략을 막기 위해 기능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쓰레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는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에서 다른 쓰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러 문화 유산이라는 개념이 생겨나면서 새롭게 발명된 관광 및 학술 연구의 용도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근대화. 산업화를 거친 대부분의 문명 사회는 그 이전의 문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 특별한 문명이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란 수많은 인공물로 뒤덮인 기술적 환경을 의미하면서 나아가 다양한 쓰임과 목적을 위한 제각각의 기술적 인공물이 풍부하다 못해 과잉 생산되고 소비됨을 뜻한다. 우리가 익숙해진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은 다양하게 식별된 목적 및 쓰임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물에 의존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공물들은 그 용도에 따른 종류와 수량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단명할 운명에 처해 있다.

더욱이 그 수많은 특화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은 대부분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첨단 과학과 기술의 산물이다. 이런 물질은 시간이 지나도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 분해되거나 처리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합성수지, 방사능 물질 등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이러한 물질로 만들어진 폐기물을 처리하는 행위는 우리 눈앞에서 치워 주변을 깔끔하게 만든다는 의미를 갖겠지만 그 물질은 대부분 저 멀리 어디론가 이동되어 지구의 환경에 오래오래 상흔을 남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흔히 실천하는 쓰레기 처리는 우리 주변의 환경을 청결하고 깔끔하게 유지하려는 기본적 욕구임과 동시에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우리의 청결을 위해 타 지역, 나아가 지구 생태계를 희생양 삼아 오염을 전가시키는 이기적 욕망의 발현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삶의 조건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필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구 환경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서 쓰레기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제안하고 싶은 점은 우리 삶의 조건, ‘문명의 조건’을 조금 전환적으로 생각하면 쓰레기 문제와 미래 세대가 살아갈 시대에 필요한 창의성이 연결될 실마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남양주시는 아이스팩 재활용, 플로깅, 두 번째 옷장 등의 기획을 통해 쓰레기 문제 해결에 선구적인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실천이 주변 환경 청결, 분리 배출과 재활용 처리 공정 개발, 아나바다 개념의 재사용 등 일반적 쓰레기 처리, 자원 재생 개념에 머무르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환경 미화, 청결, 물자 절약은 언제나 중요하고 실천할 가치가 있는 활동이지만, 오늘날 쓰레기 문제가 이러한 차원을 넘어 기후 위기와 같이 현대 문명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며 우리가 삶의 토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안적 문명 질서와 관련하여 인공물(물건)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과 쓰레기 문제를 연결하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마치 문화 유산의 개념이 생겨나면서 피라미드와 만리장성이 오랫동안 방치된 건축 폐기물이 아니라 관광 및 학술 연구의 용도로 탈바꿈했듯이.

합성수지 일회용품과 같은 일상의 물건이 극적으로 보여주듯이 어떤 지극히 특화된 목적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고 그 물건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며 사용된 후 즉각 폐기하는 개념 속에서 만들어지는 물건의 짧은 생명주기 현상이 문명의 핵심 문법으로 자리잡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바로 그 지점을 재고함으로써 전환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서 쓰레기 발생을 최소화하자는 제안에는 문제를 피하려는 노력이 있지만, 그 핵심 문법을 ‘어쩔 수 없이’ 승인하는 전제가 여전히 작동하는 듯하다. 그 대신 필자는 ‘물건의 사용’에 주목하는 대안적 상상력을 제안하려고 한다.

영국의 기술사학자 에저턴(David Edgerton)은 기술의 역사를 서술할 때 기술의 최초 발명, 혁신에 방점을 두는 미래주의적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인공물(물건)의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 기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이 최선이나 정답은 아니다. 추상적인 기술은 구체적인 물건으로 구현되어 ‘사용’될 때 중요해지고 물건의 입장에서는 ‘삶’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음식을 담는 단순한 그릇은 메타버스, 블록체인 같은 첨단 기술에 접속할 수 있는 내 손안의 스마트폰보다 중요할 뿐더러 더 지속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또한 같은 인공물이라도 어떤 상황 속에서는 꽤 다른 ‘사용’법을 만나 또 다른 삶을 부여받을 수 있다. 1980년의 영화 <부시맨>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 중 바깥으로 버린 콜라병을 발견한 부시맨들이 그것을 귀하게 여기며 여러 실용적 용도로 사용하는 첫 장면은 그러한 경우인 듯하다. 물론 그것을 너무나 신기하고 유용하게 여긴 나머지 평화로운 부시맨 마을에서는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그것을 세상 끝에 버리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지만.

물건의 지속가능한 삶은 우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내구연한이 길어지는 상태로 유지해야 함을 의미하고, 여기서 기술의 미래주의적 혁신보다는 유지보수(maintenance)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기술의 유지보수는 일상에서 수리 문화(repair culture)의 형태로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1980-90년대까지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전파사들을 생각해보자.

물건의 지속가능성에서 또 다른 가능성은 같은 물건이라도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용도의 발견 혹은 발명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영어에서 동사 use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make use는 19세기 전까지 “용도를 만들다”는 뜻으로 물건을 원래 용도로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 새로운 사용 방법을 만들어 물건을 계속 쓰도록 한다는 뜻이었다.


이 개념은 우리 문화에서 변통(變通)이라는 용어로 나타났다. 오늘날에도 쓸모 없어진 책에 대해 “쓰레기”라고 하기보다는 종종 “냄비 받침으로 쓴다”는 표현을 하는 데서 변통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조선 시대에는 “항아리 뚜껑으로 쓴다”고 표현했다). 산업화 이전에는 동서양 모두 언제나 한정된 자원 속에서 살아온 문명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그런 문명에서 물건의 폐기는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반면 변통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개념이었던 것이다.

18세기 이후 조선의 개혁적 학인들을 흔히 실학자라고 부른다. 그들이 즐겨 썼던 실용(實用), 이용(利用), 적용(適用), 수용(需用) 등의 용어는 변통의 문화 속에서 그 의미를 더 분명히 규명할 수 있다. 외래에서(주로 중국, 중국을 통한 서양) 얻을 수 있으나 언제나 한정되며 조선의 문명과 이질적인 자원과 지식을 최대한 조선 문명 속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에는 언제나 변통의 창의력과 통찰력이 있어야 했다. 실학자들의 기본 이상을 이러한 지평 위에서 이해할 때, 실학을 우리의 현대 문명적 관점에서 일상 생활의 편리와 경제 발전을 도모한 학문이라고 평가하는 관점은 불행히도 시대착오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공교육 및 대중적 차원에서 실학자들은 주로 경제와 과학기술을 진흥하여 국부(國富)를 일으킬 것을 주장한 근대 문명의 선구자로서만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변통의 창의력은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어떤 숨은 원동력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전후 미군 부대에서 유출된 군사 장비는 당시로서는 첨단 전자 기술의 결정체였다. 이 물건은 암암리에 유통되어 장사동, 청계천의 골목에서 해체되고 유통되었다. 그렇게 유통된 각종 부품, 모듈, 각종 설명서들은 어떤 아이들을 신비한 전기 기술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품을 하나하나 연구하면서 복잡한 라디오 회로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부족한 지식과 자원의 한계 속에서도 변통의 능력을 발휘하여 어떻게든 작동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아이들 중 한 명은 1974년 한국 최초의 반도체회사인 한국반도체를 설립한 강기동이었다. 이 회사는 오늘날 삼성반도체의 전신이었다.

필자는 때때로 우리가 쓰레기 문제를 포함한 환경 의제와 4차 산업 혁명과 같은 첨단 기술의 혁신을 은연중에 별도로 생각하며 환경 문제를 구호로만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이는 지난 세대가 남긴 뿌리깊고도 낡은 이분법의 변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 경제 발전이 한창일 때 공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운동가들이 억압받았던 역사는 오늘날 더 이상 현실이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의 구호 속에서 혁신이라는 가치로 대변되는 경제 발전의 신조(信條)가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는 전제를 유지한 채, 전지구적으로 부각되는 환경 의제에 주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이전 시대와는 질적으로 달라진 변화에 대응한다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하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올 상반기 남양주시의 퇴계원, 진건, 진접, 조안에 청소년을 위한 펀 그라운드가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청소년들이 일상의 학업에서 벗어나 재능과 끼를 펼칠 수 있도록 기획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전국의 지자체 중 남양주시가 독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왜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곳도 아닌 노는 곳을 공적 자금으로 조성할까? 여기에는 소비와 충동을 자극하는 게임, 사설 놀이 공원의 정형화된 모험에서 청소년들의 놀이를 해방시킬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때 진정한 의미의 창의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은 우리 사회의 대체불가능한 공공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획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


이런 훌륭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심미적ㆍ물질적 안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잘 정비된 환경, 안전한 시설물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오늘날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이는 경우에 따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케임브리지의 과학철학자 장하석은 과학적 창의력에 대해 그것은 필요한 어떤 상황이 되어야 발현된다고 보았는데, 이는 모든 것이 완벽히 갖추어진 환경에서는 해결할 문제가 없고, 따라서 문제 해결을 위한 창의력이 발달할 까닭이 없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필자는 펀 그라운드에서 주로 기획한 청소년들의 예술적, 혁신적 창의성 외에 변통의 창의성을 위한 기획을 더 제안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어떤 의미에서 21세기의 실학을 수행하는 학당이 될 것이고, 정약용의 도시 남양주의 역사적 위상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갖춘 풍요로운 공간 대신 세심한 고려가 뒷받침된 적당한 결핍, 적당한 흐트러짐, 적당한 안전이 제공되는 환경을 생각해볼 수 있다.


자라나는 미래 세대가 직면할 수 있는 전지구적 위기는 작금의 문명이 제공하는 풍요가 아니라 물질과 기술의 결핍과 한계 상황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변통의 창의성과 대안적 문명의 상상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를 통해 남양주시의 에코피아 프로젝트는 단순히 환경 정책을 넘어 청소년 교육, 복지 등의 여타 정책 의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머지않아 예상되는 우리 문명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데이비드 에저턴, 정동욱ㆍ박민아 옮김,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석탄, 자전거, 콘돔으로 보는 20세기 기술사 (휴머니스트, 2015)
볼프강 M. 헤클, 조연주 옮김, 리페어 컬쳐: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 (양철북, 2021)
Simon Werrett, Thrifty Science: Making the Most of Materials in the History of Experimen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9)
유상운ㆍ조동원, “무전기에서 라디오로 – 전자 기술 문화와 반도체 산업 발단의 착종사”, 한국과학사학회지 43:3 (2021), 557-600.


<저작권자 ⓒ 더-경기북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미옥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