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의 시대, 에코피아의 상상력을 꿈꾸며
브라질의 가난한 도시였던 꾸리지바는 생태 도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룬 대표적 도시로 평가받는다. 이 도시는 1970년까지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무분별한 개발과 폐기물 문제, 도시 빈민의 증가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후 놀랍게도 이 문제적 도시는 모범적 생태 도시로 탈바꿈했다. 꾸리지바는 이후 이십 여년의 도시 재생 과정을 거치며 분리 수거된 쓰레기를 생필품으로 바꾸어주는 정책을 통해 쓰레기 문제와 빈민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재활용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장에 도시민들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자원과 고용의 지역 순환 경제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는 1970-1992년 동안 세 차례 시장에 연임했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의 혁신적인 상상력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만들어 낸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한편 그 기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새마을 운동의 기치 아래 농촌 근대화와 도시 중심의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정치적으로 군부독재에 치열하게 저항해 결국 1987년 체제를 확립한 놀라운 성취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통상 세계사에서 산업화의 물결에 늦게 올라탄 후발 산업국가가 취했던 성공 전략은 독일처럼 선진 산업국가를 따라잡기 위해 전쟁이라는 무리수를 두거나, 미국처럼 대공황 혹은 세계 대전의 후유증으로 유럽의 패권이 약해진 상황에서 세계 질서를 선도할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거나, 일본처럼 서양의 문물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전사회적인 유신(維新)을 추진하는 방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 어떤 전략도 취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산업화가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수탈 경제로 구조 속에서 시작된 데다가 해방 후 동족 상잔의 전쟁을 겪으며 어떤 산업적 기반도 남아 있지 않은, 전 세계에서 비참하고 가난한 나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는 역사적 전환을 통해 세계사적으로 불가해한 산업화의 성공을 이루었다.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한강의 기적’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처럼 태극기부대를 연상시키는 고루함과 진부함의 끝판왕 같은 클리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은 그 케케묵은 느낌과는 별개로 역사적 설명을 필요로 하는 매우 특이하고 독보적인 성취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 기적은 지금의 우리에게 삶을 옭아매는 어떤 족쇄가 된 듯하다. 한강의 기적은 부지불식간에 우리나라의 모든 도시가 한강을 품은 도시, 서울을 최고의 이상향으로 삼아야 한다는 정언명령으로 탈바꿈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서울 같은 도시가 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는 아무리 잘 해봐야 서울의 아류이고, 수도권 신도시의 재생산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에서 ‘사람 사는 곳’이란 서울을 정점으로 하는 수도권일 뿐, 그 밖의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거나 곧 그렇게 될 지역, 혹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간주되어 주거지와 공존하기 어려운 산업 시설, 페기물 처리장과 같은 혐오 시설의 후보지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 소멸이라는 파국이 차차 현실화되어가는 상황은 바로 이런 흐름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이러한 위기를 생각해본다면, 남양주시가 도전하고 있는 에코피아 프로젝트는 ‘선진’ 도시 서울의 닮은꼴이 아닌 스스로의 정체성을 자주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 이러한 시도는 마치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의 도시가 미국의 뉴욕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을 때, 과감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던 꾸리지바의 도전처럼 참신하면서도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에 하나의 의미있는 해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 해답이 다소 역설적이게도 서울과 가까운, 수도권의 도시이기에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남양주시는 수도권의 시 중 도시와 농촌이 함께 공존하며 교통 인프라가 급속도로 확충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조건을 활용하여 남양주시가 천혜의 자연 환경을 유지하면서 도시의 인프라를 스마트하게 구축한다면 생태적 자족 경제의 좋은 전범이 될 것이다. 이는 수도권 집중화와 집값 상승으로 고통받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대안적 삶의 터전을 제시할 수 있는 거버넌스로 그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21세기의 지속가능한 전환적 생태 도시의 성공 사례로 기억될 수 있다. 그것은 지난날 ‘한강의 기적’을 실현하여 이제 선진 산업국의 대열에 당당히 합류한 한국에서 시도된 생태 도시로의 성공적 전환 모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망은 남양주시의 에코피아 프로젝트에 얼마나 창의적인 상상력과 전지구적인 문제 의식이 결합되느냐에 따라 그 실현 여부가 달려있을 것이다. 앞으로 에코피아 프로젝트에 더 흥미진진한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 21세기의 꾸리지바, 아니 기후 위기 시대의 성공적 전환 도시 남양주시가 되기를 회망해본다.
* 필자소개 : 오승현교수
과학기술의 역사를 공부해 왔고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그 공부를 더 확장하며 대화하고 있다. 인류세, 기후위기의 21세기에 풀뿌리 수행에 기초를 둔 기술적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고민과 실천을 병행 중이다. 이와 관련하여 학문적으로는 조선 후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 역사의 연속성을 기술 수행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데 장기적인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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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