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의 하루 '청권사'

'청권사'에서(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호)

서초구 방배동 효령대로에 위치한 ‘청권사淸權祠’는 효령대군 이보의 묘역으로, 조선 제3대 태종의 둘째 아들이며 원경왕후 민씨의 소생이다. 이름은 보補이며 초명은 호祜이다. 자는 선숙善叔이고 호는 연강蓮江이며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은 세조의 숙부로 왕실의 원로였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부터 불교를 옹오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세종대왕, 문종, 단종, 예종, 성정 등 6대에 걸쳐 1486년 92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

1405년 10세의 나이에 효령군에 책봉되고, 1407년 12세 때 해주정씨 정역의 딸과 가례를 올려 슬하에 7남 3녀(서자는 1남 2녀)를 두었다. 17세 되던 해인 1412년 효령대군에 책봉되었다. 어려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해서 30세 이전에 학문과 덕성을 이루었고, 붓글씨도 능하여 명필이라 전한다. 활쏘기와 효성이 지극하여 왕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417년 법명으로 연강을 수계 받고, 불교에 심취하여 승려들에게 불경을 강의 하였다. 원각사 창건 때에는 조성도감 도제조를 맡았다. 이 때 주조되어 1985년 까지 보신각에 달려 있던 큰 종과 탑골공원의 10층 석탑은 그 제조기법이나 예술성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10층 석탑은 국보 제2호로, 원각사지 대종은 보물 제2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법화경』『금강경』『원각경』『반야심경』능엄경』선종영가집』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 힘썼고, 많은 사찰을 순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청권’이란 이름은 논어 18권 미자편에 나오는 것으로 “신중청폐중권(身中淸廢中權)”의 약어이다. 주나라 때 태왕이 큰 아들 태백에게 양위하려는 뜻을 알고 동생인 두 형제가 ‘형만’이란 곳으로 가서 머리를 깎고 은거하며 왕위를 양보한 미덕을 후일에 칭송한 말이다.


효령대군도 아우인 충녕대군(세종대왕)에게 성덕이 있음을 알고 학문과 재덕을 숨기면서 왕위를 겸손하게 양보한 미덕을 우중의 행적에 비유하여 후일 영조가 사당의 이름을 '청권사'라고 하였다. 이런 연유로 청권사는 해마다 영조의 능인 원릉에서 제향을 모신다. 제향일은 매년 4월 22일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약용선생의 유배지 다산초당 뒤에 위치한 백련사는 효령대군과 인연이 깊다. 만덕사는 대흥사의 말사로 창건했다. 요세 스님이 만덕사에서 불교정화 운동으로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수행하여 백련사(白蓮寺)로 불리게 되었다. 효령대군파 시조인 효령대군은 만덕사(백련사)에서 8년 동안 머물면서 나라의 안위와 임금의 장수, 국가의 복락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청권사 모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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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옥 기자 다른기사보기